[왜냐면] 한국사회에서 자살 급증은 사회정책 실패의 결과 / 김동현

등록 : 2013.12.09 19:17수정 : 2013.12.09 19:17

 

 

2012년 자살자와 자살률이 전해 대비 10% 정도 감소하였다. 다행이다. 몇가지 자살예방 대책이 효과가 있어 이루어낸 성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자살 수준은 위기의 최정점에 있다. 며칠 전 20여년간 자폐아 아들을 보살펴온 아버지가 간병에 따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하였다. 이런 비참한 현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90년대 초와 비교하면 지난 20년 동안 전체 자살률은 약 3배 급증하였고, 고령자의 자살은 같은 시기 약 6배 급증하였다. 만약 바이러스 같은 감염병으로 한해 1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면 이는 국가적 재앙으로 간주되어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 규명과 질병 전파 예방을 위해 사회자원이 총동원될 것이다. 자살이 감염병과 뭐가 다른가? 다르지 않다. 한 사회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고의적 자해로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이 급증한다면 이를 개개인의 잘못된 선택만으로 돌릴 수 없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이듬해,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다음해에 자살이 급증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자살은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대표적인 사회질환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충격이 우리나라만 덮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를 비슷한 시기에 경험했지만 자살률이 우리처럼 치솟지는 않았다. 일본만 해도 자살률이 증가는 하였지만 이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우리나라만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의 경우, 이로 인해 이전 추세 대비 인구 10만명당 약 0.5명의 초과 자살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이전 연도에 비해 인구 10만명당 5명의 초과 자살자가 관찰되었다.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충격이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에 비해 10배 가까이 심하게 전달된 것이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지구적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초과 자살자가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한 사회에서의 자살자의 급증에는 외부 충격이 있었느냐보다 이러한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사회에 마련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타난 결과로 보면 우리 사회는 다른 국가와 달리 외부적인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낼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었고, 이러한 장치 마련을 위한 사회정책을 수립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자살 급증은 지난 시기 진보·보수 정권을 떠나 총체적인 사회정책의 실패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회정책 실패의 단적인 예가 노인 자살률에서 좀더 분명하게 관찰된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남자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30명에 가깝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노인 자살률에 비해 5~10배 높은 수치이다. 그렇다면 노인이 되면 모든 나라에서 자살률이 증가하는 걸까? 일부 그런 나라도 있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노르웨이나 뉴질랜드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자살률은 급감하여 연령군별 비교에서 노인의 자살률이 가장 낮다. 일본의 경우도 중년의 자살률이 노인보다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90년께를 보면 연령에 따른 자살률의 차이가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의 급증은 최근 10여년 사이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11년 현재 45.1%에 가까운 노인 빈곤율은 오이시디 평균 노인 빈곤율 13.5%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노인이 되면 자살률이 감소하는 뉴질랜드의 노인 빈곤율 1.5%와 비교해보면 ‘왜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이 높은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모든 노인 자살이 빈곤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치솟는 노인 자살의 상당 부분은 극심한 노인 빈곤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과 고통을 우리 사회가 적극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고, 예측하면서도 그냥 지켜보기만 한 것이다. 정책의지가 없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교한 사회정책이 수립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노인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1.7%로 오이시디 국가 중 꼴찌에서 둘째였다. 이 지표의 오이시디 평균값은 13.5%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로 보면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로 오이시디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극심한 빈곤으로 생명까지 포기하는 많은 어르신을 지켜보면서도 이들을 위해 쓸 사회적 재원이 이렇게 부족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보다 귀한 생명을 구할 돈은 어디에 가 있는가? 길바닥에 흘렸나? 아니면 강바닥에 뿌렸나?

이러한 현실을 보다못한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살예방행동포럼’(www.wooriga.org)의 창립대회가 지난 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은 16년 전 우리나라에서 아이엠에프 경제위기가 본격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포럼은 발기 선언문에서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정부, 사회, 언론을 향하여 우리가 하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막기 위한 행동을 우리가 시작할 때입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자살이라는 선택지만 던져주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은 더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해온 성장과 발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과감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의 자살이 사회정책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면, 자살문제의 극복은 개인의 잘못된 선택을 탓하기보다 제대로 된 사회정책의 수립을 통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사회정책의 변화를 견인할 시민 모두의 참여가 절실하다. 제2의 금 모으기 운동, 아니 ‘생명 살리기 운동’이 필요하다.

김동현 한림대 사회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