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12년 가입한 부부 연금액, 합쳐도 月 117만원

최근 실직한 중소기업 부장 김성일(45·이하 가명)씨와 10여년 직장생활을 한 전업주부 이강숙(43)씨 부부. 창업을 준비하는 김씨 부부의 수입은 현재 0원이다. 두 사람 모두 국민연금 납부예외(실직 등 이유로 보험료 납부 중단)를 신청한 뒤 사실상 '탈퇴' 상태다. 창업에 성공하더라도 재가입은 자신하지 못한다. 영세 자영업자 수입으로 보험료까지 감당하긴 어려울 거라는 판단이다.

두 사람의 미래 연금액을 국민연금관리공단 홈페이지(www.nps.or.kr) '내연금 알아보기'를 통해 확인해봤다. 보험료를 계속 내지 않을 경우 김씨는 월 79만1480원을, 아내 이씨는 월 38만2380원을 받게 된다. 부부 합쳐 월 120만원도 안 되는 돈이다.

액수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김씨의 생애 평균임금 대비 연금액을 따져보면 쉽다. 20년쯤 가입한 김씨의 실질소득대체율은 28.6%, 가입기간(약 12년)이 더 짧은 이씨는 17.6%에 불과하다. 정부가 말하는 소득대체율 4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물론 가입기간이 짧아 생기는 현상이다.

◇소득대체율 40%의 착시현상=정부는 2007년 연금 개혁을 하며 내는 돈(보험료)은 올리지 않되 주는 돈(소득대체율 60%→40%)은 깎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이를 밀어붙이며 선진국 예를 들었다. 이런 식의 개혁이 독일(42%) 스웨덴(31.1%) 등 선진국의 공통 현상이라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42.1%다.

이 수치만 비교하면 소득대체율 40%인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실질소득대체율과 명목소득대체율의 격차가 크다. 국민연금이 성숙한 뒤 연금을 받게 될 미래 수급자를 따져도 그렇다. 현실 속 노동자가 40년 가입기간을 채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노동환경 때문이다.

차이는 여기에 있다.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18∼19세에 첫 직장을 가져 은퇴 직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직장을 유지한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선진국은 육아·실직 등으로 노동자가 돈을 벌지 못할 때 국가가 보험료를 대납해주는 각종 보너스(크레딧) 제도를 운영한다"며 "이런 지원 덕에 이들 국가의 실질소득대체율은 명목값에 근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노동자는 노동시장에 늦게 진입해 일찍 밀려난다. 이런 상황에서 2060년을 기준으로 한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21.3년)과 실질소득대체율(26.9%) 예측값도 극도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를 꾸려 장기 계획을 세워온 정부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 및 실질소득대체율 추이' 역시 재정계산 때 나온 자료다. 정부는 지난 3월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할 당시 이 숫자를 공개하지 않았다. 실질소득대체율을 굳이 밝히지 않은 게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여주는 주요 통계를 발표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명목수치가 현실인 양 착각하도록 오해를 방치해온 것이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요한 건 명목소득대체율이 아니라 실제 급여 수준(pension level)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그걸 공개하고 국제 비교를 해야 노후준비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노년의 가난을 예약해 놓은 청년세대=현 세대 노인(노인빈곤율은 45.1%)이 가난한 첫 번째 이유는 연금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에 많이 가입할 미래 노인, 즉 현재 20∼30대 청년세대의 노년은 안전할까. 수치는 이들의 노후도 불안하다는 걸 보여준다.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른을 넘긴 지난 9월에야 취업한 박상규(32)씨. 최대한 오래 보험료를 낸다고 해도 박씨의 가입기간은 343개월(28.6년)밖에 안 된다. 40년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숫자다. 노년에 받게 될 돈도 월 88만6640원밖에 안 된다. 그나마 박씨는 월급이 국민연금 상한(월 398만원)인 고소득 월급쟁이로 첫발을 내디딘 덕에 연금액이 높은 편이다.

지난해 2월 만 서른에 첫 직장을 갖게 된 조성모(31)씨. 2년2개월의 병역특례기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한 덕에 30년을 간신히 넘겨 최대 가입기간은 384개월(32년)이지만 초봉이 20대 중후반 취업자와 비슷해 연금액은 월 57만7200원에 그칠 전망이다. 두 사람처럼 군복무를 마친 대졸 남성이 30대에 첫 직장을 잡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가입기간을 늘리려면=실직한 김성일씨가 만약 자영업자로 변신한 뒤 계속 국민연금 가입자(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로 남는다면 그가 받게 될 연금액은 월 129만6090원으로 늘어난다. 가입기간이 462개월(38.5년)로 길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김씨처럼 직장에서 지역가입자로 신분이 바뀐 이들, 소득신고를 누락하기 쉬운 영세 자영업자들을 국민연금 가입자로 붙잡아두는 것이다. 2005년 한 연구 결과를 보면 25세 남성이 일하는 기간(노동기대여명)은 36.2년인 반면 월급을 받는 기간(임금근로 기대여명)은 20.8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직장인들이 퇴사 후 여전히 자영업 등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된 기초연금법은 김씨 같은 이들을 국민연금 밖으로 영원히 쫓아낸다. 당장 김씨 부부도 "생활비가 급한데 기초연금도 깎이는 국민연금을 더 오래 가입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회공공연구소 제갈현숙 연구실장은 "저소득층이 20년 이상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장기 가입을 유도해 실질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게 중요한데 정부가 의무를 방기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도 "상황을 잘 아는 정부가 장기 가입자를 차별하는 기초연금을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이영미 박요진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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